'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읽고 감상과 좋았던 문구 ③
이 책의 저자가 정신분석 전문의이며, 일을 하며 깨달은 통찰과 교훈을 책으로 담았기 때문입니다. 어설픈 충고나 위로가 아닌 진정성과 현실성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어설픈 위로나 충고였으면,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테니까요. 아무튼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세 번째 포스팅을 시작하겠습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크고 작은 우환을 겪지만 끝내 그 길을 걸어가게 해주는 힘이 바로 자존감이다. 물론 자존감이 튼튼한 사람도 불운을 비켜 가지는 못한다. 그러나 쉽게 무너지지도 않는다.
'자존감'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압니다. '자존심'과 '자존감'은 다른 것을 사람들이 압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존감'이 튼튼한 사람은 불행한 일, 힘든 일이 있을 때 회복하여 다시 시도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에서 힘든 일이 있는 경우에는 '불행한 일', '힘든 일'을 핑계 삼아, 자기 연민에 빠져서 그대로 무너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힘들어서 자기 연민에 빠질 수 있으나, 그것이 오래가면 자신만 갉아먹을 뿐입니다. 자존감이 튼튼한 사람은 잠시 무너져도, 회복하여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여기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내일의 삶은 달라진다.
사람은 흔히 상상하는 미래는 먼 미래입니다. 10년 뒤, 20년 뒤 말입니다. 수능을 볼 때도 공부를 할 때, 대학을 입학하기 위하여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라고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일 때, 수능은 먼 미래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할 때, 오히려 중간고사, 쪽지시험, 기말고사를 생각하면 더 공부를 했습니다. 저는 1년 뒤, 5년 뒤의 저를 생각하며 행동하기보다는 오늘의 나, 내일의 나를 위해 선택하는 것이 좀 더 저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살아온 환경이 불우했더라도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으며, 그 힘으로 내일은 다르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고. 그러므로 과거의 나쁜 기억들이 다가올 미래에도 반복될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누구나 실패를 두려워하고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 합니다. 저 역시도, 어렸을 때의 결핍이 있었고 그 결핍을 다른 무언가로 채우고 싶어 했습니다. 그게 저는 연애로 채우려고 했습니다. 남자친구에게 저의 결핍을 채워줄 것을 바라고 바랬습니다. 물론, 남자친구가 그래야 하는 의무가 없으며, 그는 저랑 다른 사람이니깐요. 그래서 머리로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남자친구가 저의 결핍을 채워줬으면 좋겠고, 이는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또 다른 남자친구에게는 전 남자친구를 투영하여, 전 남자친구와 비슷한 행동을 하면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했습니다. 전혀 다른 사람인데도 말이죠. 이런 경우는 저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도 흔히 하는 실수입니다. 과거의 경험과 기억에 휩쓸려 현재의 관계를, 현재의 상황을 망치는 일이 많습니다.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과거의 나쁜 기억들을 잘 다독이면서 살아야겠습니다.
인정받고 싶어 열심히 노력했다면, 그 노력의 가치를 깎아내릴 필요가 없다. 오히려 애쓴 자신을 충분히 지지해 주어야 마땅하다.
저는 20대까지 남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말투를 바꿔보거나 살을 빼거나, 옷을 사거나 하는 등의 노력을 말이죠. 내가 원하는 옷이 아니어도 타인이 원하는 옷을 입어보기도 하고, 나에게 편한 행동이 아닌 남을 위한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에게 맞는 옷 스타일과 말투, 행동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행동이 더 의미 있는 행동이라는 평가를 받는 요즘이지만, 그동안 과거의 남 눈치를 봤다고 그 과거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과거도 충분히 사랑해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타인과 세상의 인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뜻이다.
자존감이 중요해진 요즘, 아직도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자존감이 낮다며 우울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지내고 이는 사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에 신경을 쓰고, 타인의 눈치를 보는 것은 자연스럽고 인간다운 것입니다. 타인의 눈치를 본다고 우울해하지 말고, 남을 더 배려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나 자신이라며 자신을 좀 더 사랑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을 깎아내리는 타인까지 맞춰주기까지 할 수는 없으니, 조금씩 그런 타인에게 거절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상대방을 사랑하되 자신을 돌보는 일에도 게을러지지 말자는 의미다. 특히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익숙하다고 말하며, 과도하게 사랑을 주기만 하는 사람일수록 성급하게 누군가를 사랑하기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부터 길렀으면 좋겠다.
저는 항상 "괜찮아. 아무거나 다 좋아."라고 말할 때가 많습니다. 진짜로 아무거나 다 좋을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았습니다. 타인에게 맞춰주기 위해 항상 저의 생각과 감정을 묻혀두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생각과 감정은 뒷전이었고, 자아를 잃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잃었었습니다. 그걸 알고 저를 찾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인생은 자기 자신과의 연애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애할 때 연인에게 하듯이, 자기 자신에게도 연인처럼 대해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저를 위해 노력을 하며, 타인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자연을 떠나서 인간이 살 수 없듯. 관계도 서로의 촉감을 떠나서는 깊어질 수 없다.
사람은 관계를 맺어야 살 수 있습니다. 가볍게 악수나, 팔짱을 끼거나, 포옹을 하는 스킨십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벼운 스킨십은 사람의 따스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이 힘들어할 때, 그냥 따뜻하게 안아주기만 하면 위로가 될 때도 있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이렇듯 따스한 스킨십은 위로가 되고, 사랑이 되고, 애정표현의 수단이 됩니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일수록 타인과 관계를 맺는 능력도 안정적이다.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이 불완전해도 그 자체만으로도 기뻐하고 반긴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 사랑을 줄 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은 자신도 사랑할 줄 알기에, 남에게도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 자신을 사랑할 줄 몰라, 저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 기억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왜 나 같은 애를 사랑하지?','나 같은 애를 사랑해 주다니' 등의 생각으로 그 사람을 대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생각이 그 사람에게 상처였나 봅니다. 그렇게 그 사랑을 준 사람과의 관계는 끊어졌습니다. 앞으로는 저에게 주는 사랑은 불완전하더라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게, 저 자신을 좀 더 사랑하려고 합니다.
철학자 니체는 "결혼할 때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라. 다 늙어서도 그와 대화를 잘 할 수 있겠는가? 결혼에서 그 외의 것들은 다 일시적인 것들이다."라고 말했다.
제가 직업적으로 이혼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성격차이로 이혼을 하는 부부들은 대체적으로 대화가 많이 부족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 이야기를 했습니다.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소통이란 굉장히 중요합니다. 소통은 대화를 하는 것이 표면적 의미겠지만, 다른 사람이 전달하는 생각과 감정을 받아들이고, 내 생각과 감정을 잘 전달하는 것이 소통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세 번째 포스팅입니다. 여러분들은 해당 글귀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포스팅이 되기를 바랍니다.